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프 4세 (문단 편집) == 사후 == 이렇듯 필리프 4세는 교회 세력을 누르고, 중앙집권을 이룩했지만, 불행히도 그의 자식들은 대부분 요절하는 운명을 맞이했다. 그의 장남 [[루이 10세]]는 즉위 2년 만에 20대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, 손자 [[장 1세]]는 루이 10세가 죽은 이후 유복자로 태어났으나, 5일 만에 죽었다. 조카 장 1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차남 [[필리프 5세]] 역시 상속자 없이 즉위 6년 만에 20대의 나이로 죽었다. 그 뒤를 이어받은 3남 [[샤를 4세]]는 자신의 여동생 [[프랑스의 이자벨]]을 이용하여 잉글랜드 왕위 계승에도 관여했으나, 역시 상속자없이 즉위 6년 만에 30대 초반의 나이로 죽게 되어서 결국 '''카페 왕조의 직계는 끊기게 되었다.''' 필리프 4세의 고명딸인 [[프랑스의 이자벨]]이 [[플랜태저넷]] 왕가로 시집가게 되어 모계를 통해 '''플랜태저넷 왕조의 [[에드워드 3세]]에게 필리프 4세의 혈통이 이어지게 되었다.''' 사실 루이 10세, 필리프 5세, 샤를 4세 모두 각각 장 1세, 필리프, 샤를 등 아들이 1명씩 있었지만 모두 영아기 때 [[요절]]했다(...). 더불어 딸들도 있었으나, 《[[살리카법]]》의 확대 해석으로 인해 모계 계승이 불인정되어 왕이 되지 못했다. 이후 프랑스의 왕위는 필리프 4세의 '''동생'''이었던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인 필리프 드 발루아가 이어받게 되어 그가 '필리프 6세'로 즉위해 [[발루아 왕조]]가 들어서게 되었다. 하지만 샤를 4세의 외조카이자 필리프 4세의 생존한 유일한 손자인[* 정확하게는 외손자] 잉글랜드 국왕 [[에드워드 3세]]가 프랑스 왕위 계승을 주장함에 따라 [[백년전쟁]]이 벌어지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